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다. 미국은 20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이 되었다. 미국은 지금까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둔 나라이기때문에  물질이 중요시 되어 왔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법치주의가 미국시민에게 항상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기때문에, 인종갈등, 빈부격차 등으로 늘 위험을 안고 있으면서도 균형있고 안정되게 발전되어 나아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역사적 판례를 존중하는 태도가 매우 강하다. 그러므로 과거는 권위의 주요 원천이며 미국시민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지시하는 이정표이다. 즉 법의 역사는 권위와 합법성의 원천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살아 간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처음부터 미국이 잘 나가는 나라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남북전쟁 당시에는 존폐의 위기까지 치다르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노예해방 문제뿐만 아니라, 농업국가 와 공업국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갈림길에서 많은 방황을 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끊임없이 분리를 주장하며 전쟁도발을 하는 남부동맹에게 연방헌법과 민주주의는 쓸데없는 걸림돌 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새로운 국가를 튼튼하게 세울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주류나 편견에 휩싸이지 않고 아나라를 지켰던 링컨의 원칙주의 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원칙을 지키려 했던 링컨의 삶 속에서 가장 단순하나 지키기 힘든 모든 진리의 원칙이야말로 어떤 모진 풍파도 이겨낼수 있으며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줄수 있는 훌륭한 무기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하겠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그 원칙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지 진지하고 솔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는 그원칙이 철저히 무시되고 방치되어 왔던 한국이라는 문화적, 정신적 배경을 두뇌 속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정도의 차이일뿐이지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본능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미국 사회도 처음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이 발달된 나라는 아니었다.

미국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이 짧은 시간안에 신장된 것은 원칙을 중시하는 미국시민들이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노력해 왔던 그들 스스로의 문제의식 고취와 도전정신의 실행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미 합중국 16대 대통령 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1년 대통령 취임 첫 연설에서 온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미합중국이 통상적인 국가가 아니고 단순히 계약에 근거를 둔 연합에 불과하더라도, 하나의 계약인 그 연합이 일부 계약자에 의해 쉽게 무효화될 수 있습니까? 한쪽이 그 계약을 위반, 즉 파기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연방을 합법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모두가 해체하는 것에 동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링컨이 주장하였던 원칙주의의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과연 이 원칙이라는 너무도 간단하고 우직한 원칙을 얼마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이 불편하고 귀찮으며 깝깝하기까지 한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1990년대에 네덜란드 학자가 세계 17개국을 대상으로 국민들의 행동양식을 조사해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 행동양식을 조사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상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신은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었는데 제한속도 30km 구간에서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치고 말았다. 친구가 85km 과속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현장의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는 구속되었고 그의 변호사가 만약, 당신이 법정에서 친구가 30km 속도를 지키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고 증언을 해준다면 친구가 중대한 벌을 면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것인가? 조사자는 아무리 친구지만사실대로 (제한속도를 어긴 같다고) 증언하겠다.’ 입장을 원칙주의(혹은 보편주의), ‘친한 친구를 위하여 거짓 증언을 하겠다.’ 입장을 현실주의(혹은 특수주의) 나누어 결과를 분석하였다. 흥미롭게도 캐나다가 원칙주의와 현실주의에 대한 비율이 96:4로서 가장 높았고, 다음이 미국으로서 95:5였고, 스위스는 94:6, 호주는 93:7, 서독은 91:9, 일본은 67:33, 말레이시아는 55:45, 중국은 48:52, 인도네시아는 47:53, 그리고 놀랍게도 원칙주의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한국으로서 26:74였다고 한다.

우리는 머리로 생각하는 원칙보다 가슴으로 생각하는 현실을 더 중요시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슴으로 느끼는 안타까운 현실때문에 얼마나 많이 머리로 생각해야 할 원칙을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도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가슴으로 풀어가는 현실주의가 얼마나 많이 머리로 풀어 가야할 원칙주의를 힘들게 하고 옭아 매고 있는지 누구나 한번쯤 깊이 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의 조화롭고 원칙적인 만남이야말로 미국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우리의 후손들이 지켜 나가야 할 영원한 원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