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을 이야기할때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개념은 힘과 조종입니다.
가정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핑계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핑계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고 정당화되어서도 안됩니다.
오랜 연구 끝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 무엇보다도 힘과 조종에 대한 끝없는 욕구가 크게 자리잡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술도, 마약도, 의처증도, 아내가 성질을 돋군 것도, 아이가 화나게 만든 것도, 직장을 잃게 된 것도, 그 어느 것도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힘으로 제압하고 그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를 조종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입니다.
이러한 힘과 조종을 얻기 위해 가해자들은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감정적 학대를 서슴지 않고 행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신체적 학대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 실수를 종종 범하곤 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신체적 학대만 가정폭력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가해자들이 신체적 학대 뿐만 아니라 비신체적 학대들도 조금씩 섞어서 행하면서 피해자들을 제압하고 조종하는 수법을 쓰곤 합니다.
예를 들어 오랜 세월 동안 신체적 학대를 받아온 피해자들의 경우, 나중에는 신체적 학대가 줄어들고 욕설 등의 언어적 학대, 재정적 컨트롤등으로 학대의 양상이 변해도 신체적 학대를 받는 피해자들과 다를 바 없는 동일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눈빛만으로도 가해자들이 시시각각 휘두르는 힘에 제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의 주변에서는 단지 신체적 폭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들의 호소를 가볍게 여기거나 오히려 피해자들을 비판하는 기막힌 상황도 생겨나게 됩니다.
다음의 예들을 참고하시면 비신체적 학대를 이해하시는데 다소 도움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1) 강압과 협박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때리겠다고 한다.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한다 (이혼하겠다고 하거나 집을 나가겠다고 한다).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한다.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정부에 신고하겠다고 한다.
이미 경찰에 체포된 상황에서 혐의를 낮추기 위해 경찰에 신고한 내용을 번복하라고 협박한다.
협박을 통해 불법적인 일을 하게 만든다.
눈빛, 동작, 제스츄어 등을 통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의 물건이나 피해자의 물건을 부순다.
애완동물을 학대한다.
총기류 등의 무기를 보여준다.
2) 감정적 학대
피해자를 하대하고 자신감을 잃게 한다.
피해자를 조롱하는 말로 부른다.
피해자로 하여금 스스로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몰고 간다.
피해자로 하여금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
피해자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3) 고립
피해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조종하려고 한다 (피해자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얘기를 나누며 무엇을 읽고 어디를 가는지를 다 알고자 한다).
피해자의 외부활동을 제한시킨다.
모든 학대의 이유를 피해자로 인한 질투심이라고 핑계를 댄다.
4) 과소평가, 부인, 비난
자신의 학대를 가볍게 여기고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한다.
학대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자신의 학대가 자신의 책임이 아니고 피해자의 책임이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학대가 일어난 원인이 피해자로 인한 것이었다고 한다.
5) 아이들을 이용한 학대
피해자로 하여금 아이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유도한다.
아이들로 하여금 부부 사이의 메세지를 전하게 만든다.
이혼 부부의 경우, 아이들을 만나는 때를 이용해서 전 배우자를 괴롭힌다.
아이들을 뺏어가겠다고 협박한다.
6) 경제적 학대
배우자의 취업을 막는다.
피해자가 돈이 필요할 때마다 매번 가해자에게 정확한 용도를 말하고 액수를 요구하게 만든다.
배우자로 하여금 수입이 얼마인지 알지 못하게 하고 일정 기간에 한번씩 정해진 액수의 돈 이외에는 주지 않는다.
공동재산에 대해 일체 알리지 않고 배우자가 공동재산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다.
7) 남성우월주의
피해자를 노예처럼 부린다.
피해자에게 일체의 결정권을 주지 않고 집안의 모든 일을 단독적으로 결정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지를 강조하고 피해자가 반대의견을 낼 때에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긴다.
(위에 제시된 예들은 1984년에 Domestic Abuse Intervention Project (DAIP) 에서 만들어진 Power and Control Wheel 을 참조했습니다)
신체적 학대는 세월이 지나면 아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세월이 지나도 고스란히 남아 피해자의 삶을 여러가지 양상으로 지배하게 마련입니다.
비신체적 학대는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상처를 남기지만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더 큰 비극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