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인간과 사랑을 하고 아기까지 낳은 인간이란 가상을 소재로 쓰여진 다빈치코드가 예상했던데로 기독교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책보다 효과가 더 큰 영화 상영을 눈앞에 두고 삼위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카톨릭, 그리스정교, 신교가 다빈치코드 반박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내주변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다빈치코드에 대한 공통된 관점은 다빈치코드는 단순한 소설일 뿐 결코 책의 예수에 대한 신성모독이 자신들의 기독교신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내가 보는 다빈치코드에 대한 시각은 천재적인 작가가 논란많고 흥미거리인 예수의 인간적인 면을 소재로 돈벌이에 이용한 것이든지 아니면 진짜 책내용처럼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의 진짜 의도가 뭐였든 교계가 나서면서까지 다빈치코드와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항상 그렇듯 이런 식의 대응은 오히려 별것도 아닌 책이나 영화를 더 뜨게만들어줘 결국 이걸 이용해 돈버는 사람들의 배만 더 불려 주게 된다.  

그리고 모든 종교에 흐르는 공통된 테마인 관용이란 시각에서 볼때도 자기와 종교관이 틀리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다. 성배의 진실이 드러나도 정신무장이 잘된 성직자들은 흔들림이 없겠지만 일반 신도들은 틀리기 때문에 교회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을 것이라는 구절이 다빈치코드에 나온다.  

결국 교계가 일반 신도들의 신앙이 흔들릴 것을 두려워해서 책이나 영화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인다면 결국 작가가 예기한데로 진실을 숨기려는 교회의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교계는 다빈치코드의 내용이 실제 역사와 어떻게 다른지 그 허구성을 짚어주는 책,세미나,영상물등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선택과 판정은 신도개개인에게 맡겨져야한다.  마호멧을 만화로 풍자해 그렸다는 이유로 이슬람교도들이 과격데모를 한 적이 있다.  기독교가 주류인 서방에선 종교의 자유등을 거론하며 이슬람의 과격데모를 비난한 바 있다. 미국의 뿌리가 비록 청교도에서 시작됐다고는 하나 미국은 한편으론 종교의 자유를 확실히 보장하려고 노력해왔다.   

청교도자체가 종교박해를 피해 신천지로 왔기때문이다.  물론 마녀사냥, 퀘이커나 모르몬에 대한 박해등 미국도 종교박해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국가차원에선 종교와 정치의 확실한 분리 그리고 특정 종교에 대한 국가적인 신봉을 거부한다.  

민주주의는 종교의 자유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는 미국의 모든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는 종업원 5인이상의 작업장에선 종교 차별을 당할 경우 정부기관에 고발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놓고 종업원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호해준다. 

종교단체도 아닌 고용주가 구인광고에 독실한 신자분 환영이란 광고를 내놓는 것은 처음부터 노동법을 위반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한인고용주들중엔 기독교신자들이 많다. 

특히 목회자들이 본업 또는 부업으로 사업을 한다.  성경말씀이 들어있는 액자나 십자가하나쯤은 작업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작업장에선 고용주가 얼마든지 자신의 종교를 이런식으로 드러낼 수 있지만 근무시간중 또는 외에 자신이 믿는 종교행사 참여를 종업원에게 강요하거나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노동법상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염두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