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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기업 66%가 주소지로
한국 기업도 美 진출때 선택

 

지난해 말 네이버는 미국 패션 이커머스 업체 포시마크를 인수하기 위해 미국 델라웨어에 법인을 세웠다. 네이버가 설립한 미국 회사와 포시마크는 모두 델라웨어에 있어 인수는 사실상 델라웨어에 있는 두 회사를 합친 것이었다. 지난해 11월 롯데케미컬도 델라웨어에 만든 법인을 중심으로 일진머테리얼스 인수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7월엔 미국에 새로운 법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현대자동차와 롯데바이오로직스가 모두 델라웨어에 법인을 등록했다. 델라웨어는 미국에서 둘째로 작은 주(州)이자 인구도 100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들이 이곳에 줄줄이 회사를 세우고 있는 셈이다.

 

‘사람보다 회사가 더 많은 주.’ 델라웨어 인구수는 지난해 100만3000명으로 집계된 반면, 이곳에 등록된 법인 수는 2021년 이미 180만개를 넘었다. 델라웨어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업들에 인기 법인 등록지로 통한다. 미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중 66.8%가 델라웨어주에 법인을 세웠다. 구글 모기업 알파벳과 아마존의 본사는 각각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의 법인이 등록된 서류상 본사 소재지는 모두 델라웨어다. 서류 한 장만 내면 하루 만에 법인이 등록되는 간편한 절차를 갖춘 데다가 미국 주 법원 중 유일하게 수백년간 회사법만 다루는 법원(Court of Chancery)을 따로 두고 있다는 강점 때문에 미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진출을 하는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까지 델라웨어에 몰려드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델라웨어엔 사람보다 법인이 많아?

 

최근 들어 기업들의 델라웨어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2021년 미국 증시에 상장한 미국 기업의 93%가 델라웨어에 법인 등록을 했다. 기업들이 꼽는 델라웨어의 장점 중 하나는 효율성과 속도다.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는 “델라웨어 현지 대행사를 통해 양식지 한 장 냈는데 다음 날에 법인 등록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우리나라에서 법인 등록을 했을 땐 제출 서류들이 훨씬 많았고 시간도 서너 배 더 걸렸다”고 했다. 국내 로펌의 한 미국 변호사도 “델라웨어의 법인 등록 부서 공무원들은 기업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일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델라웨어는 기업 법률 사건을 담당하는 별도의 사법 체계인 형평법 법원을 두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지난 14일 CNBC 보도에 따르면 미국 다른 주 법원에서는 3~4년에 걸쳐야 끝나는 기업 관련 재판이 델라웨어에선 1년 만에 끝난다고 한다. 18세기부터 시작된 델라웨어의 형평법 법원은 기업법에선 기업과 법조계 양쪽으로부터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델라웨어에 법인 등록을 한 국내 기업의 변호사는 “델라웨어 형평법 법원의 판결은 안정적이고 일관적인 데다가 주 정부 회사법이 친(親)기업 성향을 보여 사법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내 조세피난처 역할 비난도

 

델라웨어의 법인세 규정도 기업에 유리한 구조로 짜여져 있다. 미국의 법인세는 연방세와 지방세인 주법인세로 이원화돼 있다. 델라웨어의 법인세율은 8.7%로 미국의 다른 주(5~9%)에 비해 낮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델라웨어 등록 법인은 다른 주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델라웨어에 등록된 법인은 대부분이 지주회사 형태다.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도 한국에서 사업을 하지만 지주회사는 델라웨어에 등록돼 있다.

 

델라웨어는 주 법인세를 포기한 대신 법인 등록을 하나의 산업으로 키워냈다. 법인 등록을 도와주는 대행사와 로펌들이 벌어들이는 돈과 기업이 법인 등록을 위해 관공서에 내는 각종 비용은 델라웨어 주 예산의 40%를 책임진다.

 

하지만 델라웨어는 ‘조세피난처’로 악용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익명으로 하루 만에 법인을 만들 수 있다는 점과 다른 주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한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 때문이다. 2016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2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이 밝혀져 탈세 의혹을 받았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클린턴 부부가 법인 주소로 등록한 ‘1209 North Orange St’에는 무려 28만5000개의 회사가 주소를 두고 있었다. 힐러리의 옆집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페이퍼컴퍼니가, 옆 건물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가 있었다.

 

 

출처 : 조선일보